기본값 효과, 미리 정해진 쪽이 이기는 이유
선택지를 바꾸지 않고 기본값만 바꿔도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미국 기업의 퇴직연금 자동 가입 사례를 분석한 연구는 가입률이 크게 올랐을 뿐 아니라 상당수가 회사가 정한 기본 납입률과 기본 상품에 그대로 머물렀다고 보고했다. 장기 기증 의사를 물은 온라인 실험에서도 응답자 161명 기준 옵트인 조건 약 42%, 옵트아웃 조건 약 82%로 갈렸다. 저축을 자동이체로 먼저 빼두는 것이 효과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가입 방식만 바꿨을 때 일어난 일
미국의 한 기업이 퇴직연금 제도를 직원이 신청해서 가입하는 방식에서 자동으로 가입되고 원하면 빠지는 방식으로 바꿨다. 2001년에 발표된 연구는 그 전후 코호트를 비교했다. 결과는 가입률의 상승만이 아니었다. 자동 가입된 직원 중 상당수가 회사가 정한 기본 납입률과 기본 투자 상품에 그대로 머물렀다. 제도가 바뀌기 전에 그 조합을 스스로 선택한 직원은 매우 적었는데도 그렇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저축 행동의 큰 변화가 단지 제안의 힘만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사람들이 기본값을 회사의 권고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함께 지적됐다.
다른 영역에서도 같은 패턴
이 현상은 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3년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는 장기 기증 의사를 묻는 온라인 실험을 진행했다. 응답자 161명을 세 조건에 나눴다. 기본값이 비기증인 조건, 기본값이 기증인 조건, 그리고 기본값 없이 그냥 선택하게 하는 조건이다. 클릭 한 번으로 바꿀 수 있어서 노력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동의 비율은 각각 약 42%, 82%, 79%로 갈렸다. 기본값이 있는 조건과 없는 조건의 차이보다, 기본값이 어느 쪽이냐의 차이가 컸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기준선인지의 문제라는 뜻이다.
가계에서 기본값을 바꾸는 방법
이 원리를 개인 예산에 적용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지금의 기본값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바꾸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계에서 기본값은 이렇게 돼 있다. 돈이 들어와 계좌에 머물고, 한 달 동안 쓰고, 남으면 저축한다. 이 구조에서 저축은 매달 새로 결정해야 하는 항목이고, 매달 다른 지출과 경쟁한다. 기본값을 뒤집으면 급여일에 저축이 먼저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게 된다. 저축이 결정 항목에서 기본값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같은 소득, 같은 사람인데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본값은 나쁜 방향으로도 작동한다
같은 힘이 반대로도 작용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동 갱신되는 구독, 기본으로 켜져 있는 결제 수단, 미리 체크된 옵션은 전부 기본값 효과를 이용한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설계이고, 이용자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계속 결제된다는 뜻이다. 대응은 이쪽에서도 기본값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년에 두 번, 날짜를 정해놓고 정기 결제 목록 전체를 확인하는 규칙을 만든다. 검토가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 되면 잊혀서 유지되는 항목이 사라진다.
이 연구를 읽을 때 조심할 것
인용한 두 연구 모두 해외 자료이고, 하나는 특정 미국 기업 한 곳의 사례, 다른 하나는 표본 161명의 온라인 실험이다. 비율 자체를 한국 상황에 그대로 대입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이 연구들은 어떤 금융 상품이 좋은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져오는 것은 오직 하나다. 선택지를 그대로 두고 순서와 기본값만 바꿔도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을 기본값으로 삼을지는 각자의 판단이고, 상품 선택이 필요한 영역이라면 그건 전문가와 확인할 문제다.
출처
아래 출처는 전부 직접 찾아 확인했다. 원문이 말하는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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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Suggestion: Inertia in 401(k) Participation and Savings Behavior
—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NBER Working Paper 7682), 2001
미국 기업이 퇴직연금을 자동 가입 방식으로 전환한 전후를 비교해, 자동 가입 하에서 가입률이 뚜렷하게 높아졌고 회사가 정한 기본 납입률과 기본 투자 배분이 저축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했다. 자동 가입된 직원 상당수가 기본 설정에 그대로 머물렀는데, 자동 가입 이전에 그 조합을 스스로 선택한 직원은 매우 적었다. -
Do Defaults Save Lives?
— Science, 2003
응답자 161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실험에서 장기 기증 동의율은 옵트인 조건 약 42%, 옵트아웃 조건 약 82%, 기본값이 없는 조건 약 79%로 나타났다. 클릭 한 번으로 선택을 바꿀 수 있어 노력 차이가 거의 제거된 조건이었으며, 옵트인 조건만 유의하게 낮았다.
자주 묻는 질문
자동이체로 저축하는 게 정말 효과가 있나요?
기본값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매달 새로 결정해야 하는 항목은 다른 지출과 경쟁하지만, 자동으로 실행되는 항목은 경쟁하지 않는다. 퇴직연금 자동 가입 사례에서 확인된 것은 가입률 상승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본 설정에 그대로 머무는 경향이었다. 저축을 급여일 직후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설정하면 같은 힘이 저축 쪽으로 작동한다. 금액은 지난 몇 달 실적을 보고 실제 지킬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한다.
그럼 예산을 짤 필요 없이 자동이체만 걸면 되나요?
자동이체는 저축을 지켜주지만 나머지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자동이체가 저축을 결정 항목에서 빼주고, 봉투 예산이 남은 돈에 이름을 붙인다. 자동이체만 걸어두고 나머지를 방치하면 이체 금액을 늘릴 여지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반대로 봉투만 있고 자동화가 없으면 매달 같은 결정을 반복해야 한다.
자동으로 나가는 것들을 어떻게 관리하나요?
같은 원리를 반대로 쓴다. 검토 자체를 기본값으로 만드는 것이다. 1년에 두 번 날짜를 정해 정기 결제 목록 전체를 확인하는 규칙을 세운다. 카드 명세서 석 달치를 훑으면 목록은 한 시간 안에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던 항목을 최소 한두 개 발견한다. 그리고 그 목록은 한 번 만들어두면 다음 검토 때 훨씬 빨리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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