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링, 처음 본 숫자가 판단을 붙잡는 방식
사람은 어떤 값을 추정할 때 처음 주어진 숫자에서 출발해 조정하는데, 그 조정이 충분하지 않다. 1974년 사이언스에 실린 고전 실험이 이를 보여준다. 참가자 앞에서 돌린 회전판으로 0에서 100 사이 숫자를 뽑고 그 숫자를 기준으로 유엔 회원국 중 아프리카 국가 비율을 추정하게 했더니, 10을 받은 집단의 중앙값은 25, 65를 받은 집단은 45였다. 정확도에 보상을 걸어도 효과는 줄지 않았다.
무작위 숫자가 판단을 붙잡는다
1974년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는 추정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참가자에게 유엔 회원국 중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을 물으면서, 먼저 참가자가 보는 앞에서 회전판을 돌려 0에서 100 사이의 숫자를 뽑았다. 그리고 그 숫자가 정답보다 큰지 작은지 답하게 한 뒤, 거기서 위나 아래로 움직여 값을 추정하게 했다. 이 숫자가 완전히 무작위라는 것은 참가자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갈렸다. 10을 받은 집단의 중앙값 추정치는 25, 65를 받은 집단은 45였다. 정확도에 대한 보상을 걸어도 이 효과는 줄어들지 않았다.
출발점에서 충분히 멀어지지 못한다
저자들이 제시한 설명은 단순하다. 사람은 어떤 값을 추정할 때 초기값에서 출발해 조정하는데, 그 조정이 대체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중요한 이유는 앵커가 반드시 외부에서 주어질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같은 논문은 앵커가 스스로 계산한 중간 결과에서 나오는 경우도 다뤘다. 즉 출발점이 무엇이든, 일단 어떤 숫자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으면 이후의 판단은 그 근처에서 맴돈다. 이 성향은 정보가 부족할수록 강하게 작동한다. 처음 사보는 물건, 처음 계약하는 서비스에서 특히 그렇다.
가격을 볼 때 이 성향이 나타나는 자리
소비 상황에는 앵커가 도처에 있다. 정가 옆에 붙은 할인가, 화면에 먼저 뜨는 최상위 옵션, 월 단위로 쪼개어 제시된 금액, 처음 받아본 견적서. 어느 것도 우리 가계의 사정과 무관하게 정해진 숫자인데, 그 숫자를 본 뒤부터 판단은 그 근처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위험한 것은 비교 대상이 그 안에서만 만들어질 때다. 세 가지 옵션 중 가운데를 골랐다고 해서 그 금액이 우리 예산에 맞는 금액이 되는 건 아니다. 옵션들은 모두 판매자가 제시한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봉투가 먼저 있으면 앵커가 바뀐다
앵커링에 대한 실무적 대응은 숫자를 무시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다. 그건 잘 안 된다. 대신 자기 쪽 숫자를 먼저 만드는 것이다. 봉투 예산이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매장에 가거나 검색을 시작하기 전에 그 항목의 봉투 잔액이 얼마인지 확인하면, 첫 번째 앵커가 판매자의 가격이 아니라 내 예산이 된다. 그다음 보는 모든 가격은 그 숫자와의 비교로 읽힌다. 이 순서 하나가 판단의 기준선을 옮긴다. 홈 화면이나 잠금화면 위젯에 봉투 잔액을 띄워두면 그 확인 자체가 별도의 노력이 아니게 된다.
이 연구를 읽을 때 조심할 것
1974년 실험은 실제 돈이 오가지 않는 추정 과제였고 참가자도 특정 집단이었다. 여기 나온 25와 45라는 숫자는 그 문제 그 조건에서 나온 값이지 앵커링 효과의 일반적 크기를 재는 값이 아니다. 그리고 이 연구는 가격 판단을 직접 다루지 않았다. 소비 상황으로 옮겨 읽는 것은 해석이다. 그러니 이 페이지에서 가져갈 것은 수치가 아니라 습관 하나다. 어떤 가격을 판단하기 전에 내 쪽 숫자를 먼저 확인하는 것. 그 숫자는 지난달 실제 지출이거나 봉투 잔액이면 충분하다.
출처
아래 출처는 전부 직접 찾아 확인했다. 원문이 말하는 그대로 옮긴다.
-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 Science, Vol. 185, No. 4157, 1974
참가자가 보는 앞에서 회전판을 돌려 0에서 100 사이의 숫자를 뽑고 그 값을 출발점으로 유엔 회원국 중 아프리카 국가 비율을 추정하게 했다. 10을 받은 집단의 중앙값 추정치는 25, 65를 받은 집단은 45였으며, 정확도에 대한 보상을 제공해도 이 앵커링 효과는 줄어들지 않았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초기값에서 출발해 조정하되 그 조정이 대체로 불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자주 묻는 질문
할인 표시가 있으면 정말 더 사게 되나요?
이 실험이 직접 다룬 상황은 아니다. 다만 실험이 보여준 원리는 적용 가능하다. 정가는 판단의 출발점이 되고, 사람은 출발점에서 충분히 멀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할인율이 크게 표시될수록 그 물건이 원래 필요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뒤로 밀린다. 대응 방법은 정가를 무시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그 항목의 봉투 잔액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내 쪽 숫자를 먼저 보면 비교 기준이 바뀐다.
무작위 숫자인 걸 알아도 영향을 받나요?
실험에서는 그랬다. 참가자들은 회전판이 자기 앞에서 돌아가는 걸 봤기 때문에 그 숫자가 문제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10을 받은 집단과 65를 받은 집단의 추정 중앙값이 25와 45로 갈렸다. 정확도에 보상을 걸어도 효과는 줄지 않았다.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방어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래서 대응은 인식이 아니라 절차여야 한다.
이 연구는 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했나요?
아니다. 1974년 사이언스에 실린 해외 실험이고, 소비가 아니라 일반적인 추정 과제였다. 그래서 이 페이지는 수치를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가져오는 것은 구조다. 판단 이전에 놓인 숫자가 판단을 끌어당기고,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방어책은 하나뿐이다. 판매자의 숫자를 보기 전에 내 쪽 숫자를 먼저 정해두는 것.
이 예산을 폰에서 굴리기
Envelope Budget은 이 봉투들을 주머니에 넣어준다. 금액을 전부 배정하고, 쓸 때마다 기록하고, 실제로 얼마 남았는지 본다.
Envelope Budget 받기아이폰 · 직접 입력, 계좌 연동 없음 · 7일 무료 체험